‘이슬露’ 글자로는 시적인 운치
현실생활은 극빈의 곤궁 처량한 삶
언제부터인지 제주서도 노숙인 등장

방치하면 더 큰 사회문제 될 수도
희망나눔센터 문제 해결의 중심에
‘노숙인 관리’ 전국 모범 활동 주목

 

노숙하면 흔히 도로 주변에서 잠을 잔다는 의미로 길로(路)자를 연상하여, 노숙(路宿)으로 알기 쉽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노숙은 이슬로(露)자를 써서 노숙(露宿)이라 한다. ‘바람 속에서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잔다’는 사자성어 풍찬노숙(風餐露宿)에서 유래했다. 이런 사람들을 노숙인(露宿人)이라 부르는데, 글자로는 매우 시적(詩的)이고, 운치마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노천에서 생활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더욱이 옛날 옛적 백이숙제(伯夷叔齊)시절도 아니고, 최첨단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애오라지 모진 고생만 있을 따름이다. 얼마나 곤궁하고 의지할 곳이 없었으면, 길거리를 방황하며 생계를 이어갈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노숙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칠 때부터이다. 당시 대량으로 실업(失業)사태가 빚어지는 가운데, 서울역 등지에 노숙인이 나타나면서 주목을 끌게 되었다. 이런 노숙인은 서울이나 부산·인천 등, 대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제주도에도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노숙인은 왜 발생하는가. 노숙의 원인은 무엇인가. 뭐니 뭐니 해도 빈곤한 탓이다. 빈곤할 정도가 아니라, 극빈(極貧)하기 까닭이다. 그렇지만 노숙의 이유를, 단정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무리이다. 노숙은 원래 여러 가지 복잡한 사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이 주(主)요인이기는 하나, 이외에도 경기침체·실직·음주·게으름·무지·무능력·성격결함 등등 빌미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연이야 어쨌든, 노숙인 문제를 방치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병든 사회, 비뚤어진 세상이 되고 만다. 여기에는 정부와 지자체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민간단체에서도 협조를 해야 한다. ‘가난구제(救濟)는 나라도 못 한다’는 속담도 있지 아니한가.

우리 제주도에서 노숙인을 위해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애쓰는 단체가 있다. 사회복지법인 ‘제주공생’ 산하 ‘희망나눔 종합지원센터’이다. 노숙인들이 재활·자립을 할 수 있도록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들이 건전한 사회복귀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센터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노숙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비롯해서 현장상담, 의료·취업·입소지원과 노래교실, 문화체험, 체육(족구), 장기대회, 올래길 걷기 등 노숙인들의 건강과 위안이 될 수 있는 사안이라면 무엇이든지 사양하지 아니한다.

요즘에는 정신교육의 일환으로 ‘인문학’강좌도 개설하고 있다. “숨쉬기와 먹기만 잘하면 생명은 이어진다.” “지금 맨 밑바닥까지 내려왔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잘됐다. 이제부터는 오직 올라갈 일만 남아있으니까.” 이처럼 노숙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내용들을 강의한다.

‘노숙인 여러분에게 힘이 되어 드리겠다!’는 구호 아래 ‘희망나눔센터’를 알차게 운영하는 데는, 복지 분야의 베테랑인 김성자 센터장이 중심이 되고 있다.

노숙인 중에는 별의별 성격을 가지고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이들의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이나, 길거리에서 자신들을 인도하는 경찰관의 말은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김 센터장의 말만은 잘 듣는다고 한다. 누구든 그 앞에서는 무슨 마법에나 걸린 것처럼, 순한 양이 된다는 것이다.

왜일까. 그것은 오랫동안 공직에서 쌓아온 내공의 힘이다. 오로지 이들을 위해 희생한다는 열정에서 오는 능력이다. 실로 자모(慈母)이자, 엄모(嚴母)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도내에 실제 거리노숙자는 없다. 다만, 시설노숙인과 그럴 가능성이 감지되는 관리대상자로 140여명이 파악되고 있다. 제주자치도 이영철 복지정책과장은 “이와 같은 헌신적인 봉사자들이 있어, 제주도의 노숙인 관리는 전국적으로 모범이 되고 있다”며 고마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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