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與 고위직 첩보 때문 쫓겨났다”
특감 수사관 폭로 ‘일파만파’
靑 “미꾸라지 한마리가 개울 흐려”

일각선 ‘정윤회 문건’과 닮은 꼴
‘찻잔 속 태풍’ 아니면 ‘뇌관’
변죽만 울리지 말고 진상규명을

 

‘춘풍추상’은 중국의 채근담(菜根譚)에 수록되어 있는 말이다. 원문은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글귀가 들어있는 액자를 청와대 참모진에게 선물한 것은 올해 2월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공직자 및 한 인간으로 살아가며 이보다 더 훌륭한 좌우명(座右銘)은 없다고 생각한다. 공직에 있는 동안 이런 자세만 지킨다면 실수할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당부했었다. 특히 남들에게 추상 같이 하려면, 자신에게는 한겨울 고드름처럼 몇 배나 더 추상과 같이 대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당부와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2개월 후 김기식 금감원장에 대한 ‘외유성 해외출장’ 및 ‘셀프 후원’ 등의 논란이 불거지며 김 원장의 이중적인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에 대해 ‘추상’ 같은 발언과 행동으로 큰 주목을 받은 그였지만, 정작 스스로부터 ‘말 따로 행동 따로’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 50%가 넘는 국민이 김 원장의 사퇴에 찬성했다. 보수 야당은 물론 진보성향의 정의당마저 등을 돌렸음에도 불구 청와대와 여당은 버티기로 일관했다. 평소 ‘국민의 눈높이와 목소리’를 강조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태도였다. 결국 여론에 밀려 김기식 금감원장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검증 실패만 크게 부각됐다.

최근 들어서도 민정수석실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발단은 청와대 특별감찰반(특감반) ‘비위 의혹’ 당사자로 지목된 김태우 수사관이 “친여(親與) 고위 인사에 대한 민감한 첩보를 작성했다가 쫓겨났다”고 폭로하면서 비롯됐다. ‘친여 고위 인사’란 다름 아닌 현 우윤근 러시아 대사로, 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음은 물론이다.

이후 청와대와 김 수사관의 공방은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치닫고 있다. 청와대가 김 수사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는 반응을 내놓자, 김 수사관은 즉각 “청와대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결국 나를 감옥에 보내겠지만 할 말은 계속 하겠다”고 강력 반발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박근혜 정부 당시 ‘정윤회 문건’과 닮은 꼴이란 말까지 나온다. 집권 2년차에 민정수석실에서 발생했고, 청와대의 도(度)를 넘은 심한 반발도 닮았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 11월 세간에 공개된 ‘정윤회 문건’은 최순실 전 남편인 정윤회씨가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을 만나 청와대 내부 문제를 논의했다는 내용이다. 박관천 경정의 폭로로 알려진 이 문건은 결국 ‘최순실 사태’와 이어지며 박근혜 정권의 몰락(沒落)을 초래한 기폭제가 됐다.

이번 사건은 청와대의 말처럼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흐린 ‘찻잔 속의 태풍’이 될 수도, 아니면 정치권을 뒤흔들 ‘뇌관(雷管)’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 파장을 최소화 하려면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철저하고 전반적인 수사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취임 후 최저치’다. 어려운 경제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보다 변명으로 일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 또한 지지율 하락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문 대통령이 강조했던 ‘춘풍추상’이 필요해 보인다.

중국의 고전 중 하나인 순자(荀子)엔 이런 말이 나온다. 바로 ‘군주민수 수능재주 역능복주(君舟民水 水能載舟 亦能覆舟)’다. 임금은 배이며 백성은 물이다. 물이 능히 배를 띄우지만, 역으로 능히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심은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 세간의 관심은 이번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쏠려 있다. 지금과 같은 공방(攻防)은 국민들의 ‘흥미’만 증폭시킬 뿐이다. 때문에 정면돌파가 답(答)이다. 따라서 청와대는 변죽만 울리지 말고 보다 상세한 정보 공개로 시중의 의구심을 풀어줘야 한다.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하라는 ‘춘풍추상’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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