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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친구들과 가을 감자를 심으며 들었던 생각들

기사승인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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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직

외과의사

 

자연, 다양한 종 생명 함께할 때 ‘싱싱’
건강한 땅일수록 종의 다양성 높아져
우리 다문화 사회화 멈출 수 없는 대세

제주, 상호문화도시 지향에서부터 시작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는 열린 마음
예멘 친구들 제주인 삶에 보탬되는 이웃

 

올 가을이 시작될 무렵 초록생명마을 귀퉁이에 쓸모없다 생각되어 버려져 있던 땅에 처음으로 감자밭을 만들었다. 마침 난민 신청자로 제주에 들어와 제주난민지원센터에 머물고 있던 예멘 친구들 네 명을 불러 일단 몇 년 묵혀 놓았던 파쇄 나무 거름을 뿌리고 감자를 심을 고랑 만드는 작업을 함께 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친구들이 있어 얘기를 들어 보니 중동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농사가 가장 잘 되던 예멘이 중동에서는 가장 부국인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매장된 석유가 별로 없어 산유국 대열에는 못 끼고 최근까지도 농업 중심 사회가 유지되던 예멘은 중동 최대 빈국 중 하나로 전락하였고, 여기에 내전까지 겹쳐지면서 국민 다수가 세계를 떠도는 난민 양산국이 되었다 한다.

이런 연유로 시골 생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많아 숲과 나무, 밭, 과수들이 있는 제주 시골 정경을 좋아라들 했다. 마침 홍감자, 자색 감자, 수미감자를 씨감자로 구해 놓은 것이 있어 이들을 심고 졸지에 세 종류 감자밭 주인이 된 풍성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보통 봄에 심는 감자는 씨감자 눈을 쪼개 재를 묻혀 심지만 늦여름에 심는 가을 감자는 쪼개 심는 경우 썩을 수 있어 통으로 심는다. 이 사실은 오일장에서 씨감자로 쓸 자색 감자를 사면서 경험 많은 제주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게다가 농장을 수시로 들리는 노루들도 감자 순에는 관심이 없어 심어 놓고 노루 걱정 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감자가 알아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잎과 줄기에 초식 동물들이 싫어하는 향과 독을 심어 놓은 때문이다.

작업 후 점심은 예멘에서 셰프 경험이 있는 시 샴이 나서 농장에서 키우는 토종 맛닭을 잡아 예멘 스타일 닭 요리를 만들어 같이 나누었다. 이들이 좋아하는 야채들이 양파, 토마토, 고추 같은 것들이어서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았다.

이날 같이 감자 밭을 만든 예멘 친구 지코는 예멘 국가대표 축구 선수 출신이어서 한국 프로축구 팀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나 신분이 난민 신청자라 길이 막혀있다. 오전 네 시간 같이 노동하고 최저임금으로 계산해 예멘 친구들에게 시간당 8000원씩 32000원을 지불했다. 한국에서는 적은 액수이지만 예멘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라고 한다.

같이 즐겁게 땀을 흘린 상생의 시간이었다. 자연의 숲이나 들로 나가보면 한 종류의 식물만 군집으로 있는 것보다 다양한 종의 생명들이 함께 어울려 경쟁하고 의지하며 양분과 빛을 나누고 살 때 더 싱싱하게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건강한 땅일수록 종의 다양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다양한 문화·종교·유전자·인종·생각들이 차별 없이 어우러져 있는 사회가 더 건강하고 바람직한 미래형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제주에는 83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온 3만5000명 가량의 외국인들이 우리와 삶을 나누고 있다.

최근에도 예멘 사람 549명이 난민 신청자로 한꺼번에 몰려와 국가적인 이슈가 되었다. 여전히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불청객으로 인식하는 국민들이 많이 있지만 조금만 시각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당장은 도움을 청하러 온 환영받지 못하는 객이지만 그들을 조금만 돕고 지지한다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인구 부족 시대에 들어선 우리에게 모자란 노동력을 메워 줄 뿐 아니라 여러모로 제주인의 삶에 보탬이 되는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의 다문화 사회화는 그 흐름을 멈출 수 없는 대세라 생각된다. 미래 제주의 힘이 될 진정한 다문화사회의 첫걸음은 우리가 다른 민족과 언어, 음식, 종교, 심지어 우리와 다른 정서까지도 그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으며, 마음을 열어 공유하고 융합시켜 상호 문화적 코드로 인식하고, 상호문화 도시를 지향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난민 신청자로 제주에서 지내고 있는 예멘 친구들 대부분이 하루에 한번은 핸드폰으로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여리고 어린 친구들이다. 지난 주말 감자밭을 들러 보니 이들과 같이 심은 감자들이 보라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서 예멘이 옛 평화를 되찾아 예멘 친구들이 고향으로 웃으며 돌아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해 본다.

홍성직 외과의사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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