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도의원 불출마 선언 잇달아
고심에 찬 ‘勇斷’에 박수를
제주정치권 대폭적 물갈이 예상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대통령
‘아름다운 퇴장’ 遺産 남겨
우리 정치인도 타산지석 삼아야

 

자고로 나아가는 것보다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오경(五經)의 으뜸으로 꼽히는 주역(周易)을 보면 합당하게 물러나는 세 가지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적절한 때에 물러나는 ‘호둔(好遯)’이다. 군자는 명예롭고 아름다운 물러남을 안다고 했다. 물러남의 시기를 놓치면 쌓아온 공적과 명예가 모두 사라질 수 있다. 때문에 제때 물러나기를 거부하다가 불명예스럽고 추한 꼴을 당하는 이를 소인배라 불렀다.

두 번째는 ‘가둔(嘉遯)’으로 박수 칠 때 떠난다는 뜻이다. 훌륭하게 그 소임과 직분을 마치고 주위의 아쉬움 속 칭송을 들으며 아름답게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인기가 높아지다 보면 그 자리에 더 머물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하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준비를 마친 뒤에 물러나는 ‘비둔(肥遯)’이 세 번째다.

오래 전 TV를 통해 지구 반대편 우루과이의 ‘괴짜 대통령’을 접한 적이 있다. 이름은 호세 무히카.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2009년 우루과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성공적인 경제 재건, 소통과 믿음의 리더십으로 전폭적인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국민적 인기를 반영하듯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도 많았다. ‘결코 국민을 속이지 않는 대통령’ ‘노숙자에게 대통령궁을 내주는 대통령’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지만 철학자로 불리는 대통령’ 등등.

2015년 2월 퇴임 당시 호세 무히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무려 65%에 달했다. 또 유일한 재산은 1987년 식 폭스바겐이 전부였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지만 제일 행복한 대통령’이란 찬사(讚辭)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민들의 열화 같은 연임 요구에도 이를 뿌리친 그는 취임식 때 몰고 왔던 28년이나 된 고물 자가용을 다시 몰고 고향 시골마을로 향했다. 한번 자리에 오르면 물러날 줄 모르는 정치인들에게 ‘물러남의 미학(美學)’을 직접 보여준 아름다운 퇴장이었다. 참으로 가치 있는 정치 유산이 아닐 수 없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경식 의원(무소속, 이도2동 갑)을 필두로 현역 도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초선인 김영보·홍경희 의원이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이번 선거에 나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재선으로 도의회 부의장을 맡고 있는 박규헌 의원(더불어민주당)도 불출마(不出馬)를 선언했다.

이와 함께 10대 전반기 의장을 역임한 3선의 구성지 의원과 역시 3선으로 후반기 의장인 고충홍 의원 또한 ‘의장 역임 후 불출마’란 관행에 따라 6·13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이밖에 2~3명의 현역 의원들이 이번 선거 출마 여부를 놓고 깊은 고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르기에 불출마의 이유나 원인 또한 각양각색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무엇보다 끊기 힘든 ‘정치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점에서 고심에 찬 ‘용단(勇斷)’임은 확실해 보인다.

물러나는 사람이 있으면 나아가려는 자도 있게 마련이다. 현역 도의원들의 대거 불출마로 정치 신인들에게는 새로운 장(場)이 열렸다. 따라서 제주정치권의 대폭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6·13 지방선거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도지사 선거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국회의원 선거에선 내리 완승을 거두고 있지만 유독 제주도지사와는 인연이 없었다. 국회의원 3선을 지낸 중진급 김우남 전 최고위원과 문대림 전 청와대 제도개선비서관, 박희수 전 제주도의회 의장 등이 총출동한 가운데 과연 누가 치열한 예선전을 뚫고 본선에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렇다고 민주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에서도 각 2명씩 출마를 공식화했다. 초미의 관심사는 현 원희룡 지사의 향후 거취다. 원 지사가 통합신당(바른미래당) 혹은 무소속 출마 선택 여부에 따라 선거판도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러나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나아갈 때 역시 타이밍과 ‘천운(天運)’이 따라야 한다. 이에 앞서 스스로의 자질과 역량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도 있다. 그것은 도지사는 물론 보수와 진보의 양자 대결이 예상되는 교육감 선거도 마찬가지다.

6·13 지방선거는 이미 레이스에 돌입했다. 떠나는 사람들에겐 박수를,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들에게는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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