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청춘의 죽음, 왜 막지 못 했나] (하)

‘취업 담보’라는 ’양질의 실습처‘ 조건이 학생들엔 족쇄되기도
“파견 후에는 교사들도 업체에 잔업일지 보여 달라 말 못해”

도내 한 음료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벨트에 목이 끼어 사고 발생 열흘만에 숨진 도내 특성화고 3학년 이 모 군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고교 실습생들의 인권 문제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들의 사고와 죽음은 전국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2011년 기아차 광주공장 현장실습생 뇌출혈 사고, 2012년 울산 신항만 공사 현장실습생 작업선 전복 사망 사고, 2014년 CJ 제일제당 진천공장 현장실습생 자살, 2014년 현대차 하청업체 야간노동 중 공장 지붕 붕괴 사망 사고, 2016년 성남 외식업체 현장실습생 자살, 2016년 구의역 은성PSD 사망 사고,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현장실습생 자살 등이 대표적이다.

도내 학생들 가운데에서도 부푼 꿈을 안고 방까지 구해 경기도로 실습을 나갔지만 밤 10시까지 일을 시키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등 최근까지도 도내 학생들이 초과근무를 하거나 임금을 받지 못 하는 사례가 계속 보고 되고 있다. 이 학생의 경우 본인이 직접 경기도 지방노동청에 업체를 진정해 미지급분을 돌려받았지만 이 학생의 문제는 교육부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제주도교육청에 보고되지 않았다.

지난 19일 숨진 이 군은 작업 중 적재기 벨트에 목이 조여 사망에 이르렀다. 현재 제주동부경찰서와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이 과실 문제를 조사하고 있어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 군이 위법적인 근로여건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속속 거론되고 있지만 아무도 이군을 도와주지 못 했다는 점이다.

이 군 부모에 따르면 이 군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 등이 명시한 주 최대 40시간 이내 근무를 초과해 연장근무를 종종 해왔다. 하루 물량을 맞추기 위해 저녁을 먹지 못 하는 날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작업장에서 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졌지만 교육청에는 보고되지 않았다.

교육당국에 따르면 학생 파견 전 교사들은 실습처를 사전 방문해 근로환경을 확인한다. 학생과 학교장, 업체 대표이사가 맺는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통해서도 건전한 근로 환경 제공을 다짐받는다. 아울러 학교에서는 실습전 학생들에게 법을 위반한 업체를 고발할 수 있는 전국 공통 전화번호도 안내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신고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특성화고 관계자들의 한 목소리다. 실습이 채용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군의 경우 7월25일부터 1월31일까지 해당 업체에서 실습을 하기로 약정하면서 한 달여 뒤 졸업과 함께 채용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로 알려진다. 특히 이 군은 이후 해당업체가 병역지정업체로 지정되면 산업기능요원 1순위 후보자가 되도록 협약이 맺어져 있었다.

일선학교도 감독에 어려움이 크다. 이 군이 속한 학교에서는 4대 보험 적용, 취업보장, 직업 환경 등 여러 요건을 살펴 실습대상업체를 선별한다. 업체에 아이들을 보낼 때에도 노동인권, 안전, 계약준수를 여러 번 강조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일을 하게 되면 급여 문제나 향후 채용과 관련된 문제 때문에 업체에 잔업일지를 보여 달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이 학교 관계자는 전했다.

실습생의 인권을 보호해줄 법의 관리부서가 제각각인 점도 효율적인 감시를 어렵게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제주근로개선지도센터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은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제주지사와 제주고용지원센터가 각각 사업자나 재직자·실업자 등 일부 대상에 한정된 업무만 맡고 있다. 일선학교는 취업률을 함께 올려야 하는 입장이고, 도교육청은 선언적인 조치에 머물고 있어 실제 현장 아이들의 어려움을 구속력 있게 들여다볼 주체가 없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도내 특성화고 관계자들은 "기본적으로 안전 문제, 근로환경 개선 문제에 업체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들이 있고, 실습생에 대해서도 보호해야 할 학생이라기 보다 노동자로 보는 경향이 많다"며 "오히려 아이들을 보호하려 하면 업체들은 실습생을 받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