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간이 우선이다] <14> 일본의 사례를 보면서

한 부부의 노력이 플레이파크 만드는 기폭제 역할
‘떼’로 놀 수 있는 공간 만드는 의지 무엇보다 중요
“부모 인식 변화에다 사회와 행정이 반응을 해줘야”

놀이의 주역은 누구일까. 당연히 어린이여야 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놀이에서 배제를 당하고 있다. 놀 공간도 제대로 없으며, 놀 시간도 잘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제주매일>과 <미디어제주>는 지난해부터 놀이문화 확산을 위한 공동기획을 해왔다. 특히 올해는 놀이터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험놀이터가 잘 운영되고 있는 일본을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이번 시간은 ‘플레이파크’라고 부르는 일본의 모험놀이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정리를 해본다.

▲ 도쿄도 플레이파크

△플레이파크의 시작
일본에 있는 수많은 플레이파크는 오무라 부부의 노력(본보 2017년 10월 10일자)에서 시작됐다. 오무라 부부는 유럽 여행을 하다가 우연찮게 마조리 앨런 남작부인이 펴낸 <Planning for Play>(1968년 출간)를 본 뒤 일본에 가서 <도시의 놀이터>(1973년 출간)라는 번역서를 내놓았다.

오무라 부부는 이후 도쿄도 세타가야구 교도지역에서 ‘놀자모임’을 구성했고, 1979년 일본 첫 상설 모험놀이터인 ‘하네기 플레이파크’의 문을 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현재 일본은 200곳에 달하는 플레이파크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왜 일본은 1970년대에 플레이파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을까. 왜 당시 어른들은 ‘놀자모임’을 만들면서까지 어린이가 필요한 놀이공간을 만들려 했을까. 그걸 이해하려면 일본의 시대상을 알아야 한다.

1970년대 일본은 세계 최고의 공업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오일쇼크를 맞으며 무역 마찰을 빚는 때이기도 했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도 매우 활발했다. 그런데 맞벌이의 증대는 어린이들을 집안으로 내몰리게 했다. 일본의 속어 가운데 ‘카깃코(かぎっ子)’라는 단어가 있다. ‘카깃코’는 집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맞벌이 집안의 아이를 말한다. 카깃코가 늘면서 아이들은 사라졌다. 공간도 사라지고, 시간도 사라졌다. 놀 친구도 사라졌다. 놀이를 즐기려면 공간과 시간, 친구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모두 사라졌다.

1970년대 일본의 카깃코는 지금 우리 사회의 어린이들도 겪는 현상이다. 일본은 문제점을 일찍 인식, 플레이파크 만들기에 나섰다면 우리는 더디다. 플레이파크라는 꿈을 꾸는 게 무척 힘들다. 꿈만 꾸지 실현은 더 힘들다.

▲ 플레이파크 팸플릿-1

△일본 플레이파크 특징

기자들이 취재한 일본의 플레이파크는 모두 4곳이다. 취재 이동의 편리성과 시간의 제약 때문에 도쿄도에 있는 플레이파크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도쿄 시부야의 ‘하루노오가와 플레이파크’, 네리마구의 ‘네리마구립 어린이숲’, 신주쿠 ‘토야마 플레이파크’, 세타가야의 ‘뎃토히로바’ 등이다.

4곳 가운데 도쿄의 공식적인 공원으로 지정된 곳에 들어선 플레이파크는 하루노오가와 플레이파크와 토야마 플레이파크다. 이들 플레이파크는 도심공원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공원 깊숙이 들어갈 필요가 없이 공원의 끝자락에 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접근성이 무척 뛰어나다.

네리마구립 어린이숲과 뎃토히로바는 앞의 2곳 플레이파크와 달리 공원이 아닌, 사람들이 실제 주거하는 공간과 이웃해 있다. 네리마구립 어린이숲은 농경지를 사들여 어린이숲을 조성한 사례이며, 뎃토히로바는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에 있다는 점이 다소 다르다.

행정의 의지를 강하게 볼 수 있는 플레이파크는 네리마구립 어린이숲이다. 네리마구는 녹지비율이 계속해서 떨어지자 구청이 직접 관여하는 플레이파크를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다.

뎃토히로바는 더 독특하다. 원룸이 지어질 공간을 어린이 공간으로 만든 특이한 사례이다. 뎃토히로바가 있는 곳은 세타가야구 노자와 지역이다. 아주 조용한 주택 지역이다. 이곳에 원룸이 들어서는 문제를 파악한 야마가타씨가 원룸 부지를 아예 사들였고, 이걸 어린이들이 놀 수 있도록 기부를 했다. 주택이 들어설 바에야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는 그런 열정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4곳의 운영은 비영리기구가 맡는다. 네리미구립 어린이숲인 경우에도 비영리기구에 위탁을 주고 있다. 운영비는 구청의 보조로 충당하고 있다. 플레이파크에 오가는 아이들의 놀이를 도와주는 플레이리더의 급여도 이런 보조금에서 나가고 있다.

물론 운영을 하는 건 쉽지 않다. 때문에 이들 플레이파크는 회원을 두고 있으며, 이들이 낸 회비도 플레이파크를 이끄는 재원이 된다는 점도 빼놓아서는 안된다.

△일본이 바라보는 바깥놀이

일본은 지난 2003년 ‘차세대 육성지원대책추진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저출산 문제와 아울러 앞으로 일본을 이끌어갈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의미에서 진행됐다.

특히 일본의 총리 관할에 있는 일본학술회의는 지난 2008년 ‘일본 어린이 육성 환경을 향하여’라는 보고서를 통해 아이를 키우는 환경에 필요한 요소 8가지를 제시하기도 했다. 8가지 가운데 △아이들이 떼지어 놀 공원광장 부활 △놀이 길의 부활 △자연체험이 가능한 환경 만들기 △활발한 운동을 환기하는 시설·도시공간 마련 등은 어린이들의 바깥놀이와 직접 관계가 있다.

일본학술회의가 제시한 8가지 환경 요소 가운데 첫째는 ‘떼지어 놀 공원광장 부활’이다. 이게 바로 플레이파크와 연결이 된다. 그만큼 일본 정부에서 플레이파크를 어느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같으면 국무총리실 산하기관에서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면 된다.

△ 놀 공간 제약받는 한국

놀 공간을 잠시 생각해보자. 공원 광장도 있을테고, 학교 운동장, 도로, 바닷가, 바닷가 등 눈에 보이는 건 다 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게 놀 수 있는 공간이 못되는 현실이다. 특히 안전 때문에 아이들이 노는 공간은 갈수록 제한을 받고 있다. 때문에 학교 운동장으로, 도심의 어린이 놀이터로 어린이들의 노는공간은 묶이고 만다.

일본의 모험놀이터만들기협회는 바깥놀이의 중요한 5개 포인트로 △아이들의 생활권 △언제든지 놀 수 있는 곳 △누구와도 놀 수 있는 곳 △자연이 풍부한 야외 환경 △뭔가 만들 요소가 있는 곳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놀이공간은 5개 포인트를 모두 담고 있을까. 우리의 제한을 받는 놀이시설은 아이들의 생활권에 속해 있지만 자연이 풍부한 야외 환경은 되지 못한다. 뭔가 새롭게 만들 요소도 없다. 이미 만들어진 걸 가져다놓은 시설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플레이파크는 아이들에게 놀 공간을 만들어주겠다는 일부의 어른들로부터 시작됐다. 행정이 직접 만들기도 하고, 플레이파크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행정이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일본의 플레이파크는 3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어른들의 이상적인 생각으로 시작된 플레이파크는 일본 어린이들이 신나게 노는 공간이 됐다. 우리도 그런 날이 올까. 이상이 현실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우선은 부모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부모들의 인식변화에 사회가 움직이고, 행정이 반응한다면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일본 플레이파크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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