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 6개월 만에 입장 표명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
변호인 철수 등 재판 보이콧 돌입

정말 억울하다면 무죄 입증 나서야
적극적 재판 참여는 당연
권력 무게만큼 책임지는 모습 필요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 지난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재판 6개월 만에 입장을 표명하며 남긴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 추가 발부에 강한 불만을 드러낸 뒤 변호인단의 사임을 전했다. 이어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며 사실상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리곤 ‘행동’에 돌입한 양상이다. 박 전 대통령은 18일 수감 중인 서울구치소에 “건강상의 이유로 19일 재판에 나가지 않겠다”는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법 덕분에 대통령까지 지냈던 사람이 법치를 거부하는 일련의 행태에 실망이 크다. 그의 말과 행동도 불일치, 국민들을 다시 헷갈리게 한다.

국정농단 수사가 ‘정치보복’이라면 재판을 보이콧해선 안된다. 그의 주장처럼 무리하게 기소한 검찰의 ‘잘못’을 조목조목 따지고 ‘무죄’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더욱 적극적으로 재판에 임해야 한다.

그런데 변호인들은 철수시키고 자신은 구치소에서 버티기다. 정치보복 때문에 그렇게 억울하다면 감방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재판정으로 달려가고 싶을 텐데, 거꾸로다.

아직도 남들이 알아 챙겨주는 ‘수첩공주’인 줄로 아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있는 곳이 감방인지 청와대인지 헷갈리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재판 보이콧에 나선 박 전 대통령 측은 현 상황이 문재인 정권의 입맛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적폐 청산’이 아니라 ‘정치 보복’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자신들이 그러했으니 남들도 그러리라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설령 그러한 ‘장난’이 있었다하더라도 보수와 진보 정권에서 잇따라 이뤄지도록 놔두질 않는다. 비공개 재판도 아니다. 공개재판인 만큼 국민들도 보고 듣고 판단한다. 아직도 국민들의 상식을 의심하는 것만 같다.

세계의 눈도 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에 대한 재판인 만큼 CNN 등 외신들의 관심도 높다.

그래서 섣불리 ‘장난’을 치지 못한다. 법원도, 그리고 현 정권도 마찬가지다. 장난치다가 촛불에 크게 데인 사람을 재판하면서, 바보들이 아닌 이상 똑같은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들의 촛불은 문재인 정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잘못된 정치에 대한 단죄, 대한민국의 정의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 정부도 앞선 정부의 전철을 밟는다면 역시 촛불의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국민들의 시각은 정치보복이 아니라 잘못한 정치에 대한 사법처벌이다. 그리고 그의 혐의는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국정농단 사태와 대기업 뇌물수수 등 너무나 중하다.

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 전원 일치 의견으로 탄핵당한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당시 헌재는 결국 박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에 대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래도 정치보복 때문에 억울하다면 재판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자. 그에 앞서, 그보다 더 억울한 세월호 사건의 진상도 규명돼야만 한다. 헌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사람도 아닌 304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가운 바다에서 허망하게 사망한 사건이다. 박 전 대통령 스스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4월 16일 오전 8시50분 이후, 그날의 ‘사라진 7시간’ 행적을 소상히 공개해야만 한다. 그게 올바른 순서다.

지금도 입을 다물고 있다. 책임 회피를 위한 사건발생 보고시간 조작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증거가 확실한 피의자가 범죄 발생 시각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지 못하면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청와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공주’처럼 곱게 있다가 구치소에 갇혀 있는 모습에, 측은지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닌 건 아니다. 가졌던 권력의 무게만큼 책임도 져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건 사필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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