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책임 총리’ 표명 불구
여·야 대치정국 존재감 못찾아
‘국회와의 소통 강화’도 말로만

“송영무 등 부적격 新3종 세트”
야3당 전방위 공세에 침묵 일관
모든 책임은 대통령 몫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각은 총리 책임 아래, 각 부처는 장관의 책임 하에 일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책임감과 소신을 갖고 일하는 게 총리책임제의 기본이라고도 부연했다. 이른바 ‘책임(責任) 총리’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 초대 총리 후보로 이낙연 전남지사를 지명했다. 현직 도지사를 지명한 것은 우선 호남 출신이란 점, 또 전직 언론인으로 16~19대에 걸쳐 4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의 정치력을 높이 인정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위장전입 등 논란이 불거지며 인사 청문회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청문회를 통과하자 문 대통령은 5월 31일 이낙연 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헌법상 국무총리의 권한을 보장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헌법상 권한이란 총리의 ‘내각 제청권(提請權)’ 등을 말한 것이 분명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87조 1항은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대통령이 인사권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한 조항이다. 그러나 대통령제에 내각제 요소를 일부 가미한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死文化) 되다시피 했다.

다만,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국무총리의 위상은 많이 달랐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해찬 총리의 경우 ‘실세(實勢) 책임총리’의 역할을 그나마 다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인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 책임총리가 부활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낙연 총리가 취임한지 한 달이 다 됐으나 ‘존재감(存在感)’을 찾아볼 수 없다는 소리가 들린다. 취임 일성으로 ‘민생 및 현장총리, 국회와의 소통 강화’ 등을 역설했지만 정작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장관 인사청문회를 둘러싸고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와중에서도 총리의 역할은 없었다. 국무총리 임명 전의 일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이후 장관 후보자마다 온갖 의혹과 논란에 휩싸여 있다. 과연 이낙연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했는지 여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현재 야권은 김상곤·송영무·조대엽 후보자를 ‘부적격 신3종 세트’로 규정하며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이 겨냥하고 있는 낙마(落馬) 1순위는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자다. 그와 관련된 의혹은 ‘비리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우선 해군 참모총장 예편 후 2009년부터 33개월 동안 법무법인 율촌에서 상임고문을 지내면서 ‘약간의 활동비’로 매월 3000만원씩 모두 9억 9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매달 3000만원이면 웬만한 사람 연봉을 웃도는 수준. 그런데도 송 후보자는 “일반 서민이 알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다”라고 해명해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3년부턴 30개월 동안 LIG넥스원(방산업체)에서 2억4000만원의 자문료를 받았는가 하면, 네 번의 위장전입 사례 등도 드러났다. 오죽하면 정의당에서조차 사퇴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겠는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도 논문표절 의혹과 한신대 교수 시절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폐기 주장 등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 해명과정에서의 거짓말과 임금체불 기업 사외이사 근무 등의 전력이 드러나 집중 공세를 받고 있다.

때문에 조국 민정수석의 책임론과 함께, 이런 인물들을 제청한 이낙연 총리에 대한 야권의 비판 목소리가 높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정작 의혹과 논란의 당사자들은 비등한 국민적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청와대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강경화 장관처럼 대통령이 자신들의 흠결을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해 주길 바라는 모양새다.

‘온갖 정사(政事)를 임금이 친히 보살피는 것’을 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고 한다. 총리 등이 제 역할을 못해서인지 문재인 대통령도 ‘만기친람’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자리 문제서부터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등에 이르기까지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이 같은 행보는 순간의 감동을 줄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국민이나 장관들로 하여금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이낙연 총리가 적극 나서 할 말은 하고, 책임질 것은 마땅히 책임지는 ‘존재감’을 드러낼 때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