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고 따르는 스승은 큰 행복
오십 넘긴 최근 많이 만나
자연이 스승이고 아이들도 스승

문재인 대통령 ‘친구’와 서로 스승
나무와 꽃이 흙을 섬기듯 국민을
사제지간 존경하고 따르는 날들도

기억되고 따르는 스승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불완전한 인간으로 살면서 수시로 지혜를 구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스승의 존재는 겸손한 감사의 태도와 마음을 키워준다. 혹자는 이 시대엔 ‘스승’은 없고 ‘선생’만 있다고 개탄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적 역할만 남고 이념과 사상을 넓혀주는 정신적 지주의 역할은 모호해졌다.

새삼 스승의 날을 맞아 지난 시절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들 가운데 스승은 있었던 가 떠올려본다. 이미 떠올려 본다는 작태는 영향을 받았던 스승이 뚜렷하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일찌감치 이 나라의 학교교육과 선생님들에 대한 실망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던 것 같다. 1970년대 초 당시에는 육성회비라는 명목의 등록금을 매날 납부하는 제도가 있었다. 이 육성회비는 가정형편에 따라 600원 450원 300원 150원으로 등급이 나뉘어져 책정됐다.

형편이 넉넉한 아이는 1년 치를 한꺼번에 납부하기도 했지만 많은 아이들은 두세 달씩 밀리기가 일쑤였다. 선생님은 체납된 아이들을 방과 후에 남기고 벌로 구역을 나눠 청소를 시키며 ‘땀이 나는’ 아이를 열심의 증거로 먼저 귀가 시켰다.

평소 마르고 좀처럼 땀을 흘리지 않는 체질인 나는 맨 꼴찌까지 남아 청소를 하고 눈총을 받으며 귀가했다. 정말 열심히 청소했는데도 말이다.

불공정한 판단 기준과 일방적 소통 때문에 그 이후론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졌다. 물론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9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형편을 눈치 보며 졸라야 했던 아이에겐 큰 상처로 남았고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흉터를 남겼다.

물론 독재정권 아래 일방적 지시를 따르며 콩나물시루 같이 많은 학생들을 감당해야했던 당시 선생님들의 입장과 고충도 난처하고 무거웠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면 지금의 학교 선생님 보다는 보람되고 자부심도 충일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학교에선 교권이 땅에 떨어진지 오래여서 학부모의 눈치와 아이들의 외면을 견디며 교단을 지키는 게 현실이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오랜 독재와 급격한 성장위주의 경제개념과 출세지향의 발판으로 삼아온 학교의 역할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나이가 들고 세월을 겪을수록 스승의 존재가 그리워진다. 기운이 빠지고 자리는 좁아지면서 지혜를 구하고 용기를 세워줄 스승이 필요하다고 깨닫는다면 너무 늦은 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런데 오십을 훌쩍 넘긴 요즘 새삼 많은 스승을 만나고 있다. 몇 년 전 부터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하며 만나는 다양한 산하(山河)와 작은 텃밭을 일구며 겪는 흙과 생물의 조화가 이뤄내는 하모니는 큰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또한 망설이며 시작한 ‘인생나눔교실’이라는 소외 학생 대상 멘토 활동을 통해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깨닫고 느끼는 시간을 누리고 있다.

스승은 학교 안에 책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가 강물이 흙이 모두가 스승이고 아이들이, 그리고 친구가 스승이다.

새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행보를 보면서 대통령의 스승 중 한 사람이 절실한 친구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친구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그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신념과 정의를 소통하며 평생 의지하며 신의를 지킨 대상이 스승 아니겠는가?

친구를 스승으로 존중하며 배우는 모습은 아름답고 깊어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새 정부의 신임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은 오랜 친구이자 서로 배우고 익힌 스승의 관계다. 그렇게 나누고 체득한 경험은 나무와 꽃이 흙을 섬기듯 국민을 섬기며 희생하는 대통령이 되길 기대한다.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 탄신일이기도 하다. 백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위대한 유산을 남긴 세종대왕의 뜻을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베풀고 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날들이 산야의 초록 같이 번지기를 기대해보자. 얼마 전 흙에 묻었던 옥수수 알이 어느새 한 뼘이나 자랐고 통 일어설 것 같지 않던 고구마 줄기가 꼿꼿하게 머리를 들었다. 흙이 스승이 되고 봄비가 가르침 되어 세상을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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