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률의 유럽을 닮은 아프리카 튀니지를 가다 <41> 골목길

▲ 나불주 함마멧의 골목길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여행지의 골목길을 탐방하기를 즐긴다. 나에게 골목길이란 할머니 손을 잡고 즐겁게 걷던 길이며, 술래잡기를 하면서 뛰놀던 추억의 길이며, 겨울이면 어김없이 한 귀퉁이에 나타나 구공탄을 피워 놓고 호떡을 굽는 할머니의 곱은 손길을 보며 삶의 냄새를 느끼던 길이다. [편집자 주]

▲ 나불주 함마멧의 골목길
▲ 우연히 입수한 1900년대의 튀니스에 있는 뱁 카하드라. 이 문을 통해서만 옛 이슬람 도시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다채로운 튀니지의 골목길

나는 튀니지에서도 골목길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가치들을 보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도심지 골목길이나 내가 살던 동네의 골목길은 혼자 다녔고, 지방의 도시와 시골은 딸처럼 동생처럼 동료처럼 지내는 튀니지 사람들과 함께 다니며 튀니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튀니지에는 네 가지 유형의 골목길이 있다. 하나는 이곳을 지배했던 민족들이 살던 골목길, 하나는 프랑스가 지배하면서 세운 도시의 골목길, 또 하나는 과거와 현대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골목길, 마지막 하나는 현대적 건물들로 꽉 들어차 있는 신도시의 골목길이다.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의 중심거리는, 1332년 현재의 튀니스 메디나(옛 이슬람 도시)에서 태어나 전세계 이슬람 국가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이븐할둔’ 동상을 중앙에 두고 오른쪽에는 프랑스대사관, 왼쪽에는 ‘성 벵상트 드 폴’ 성당(1879년 프랑스 건립)을 시작으로 튀니지의 민주화 혁명의 상징인 뭉겔라(시계탑)에서 끝난다. 거리의 길이는 2.5km 정도다.

중심거리의 가운데에는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이 광장에서는 매일 다양한 공연과 전시회가 열린다.

광장에는 100년이 넘어 울창하게 자란 가로수가 심어져 있으며 가로수 양옆으로는 왕복 8차선 도로가 있다. 마치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광화문거리와 닮았다.

▲ 전 세계의 이슬람 국가에서 정치가. 역사학자, 철학가로 존경을 받고 있는 ‘이븐 할둔’동상. 프랑스가 식민지배할대 만들어진튀니스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에 있다.
▲ 튀니스 골목길 옷가게
▲ 튀니스 골목길에 있는 구제품 시장. 옷 1개가 300원부터 시작한다.

이 거리는 외국의 국가원수, 국왕, 총리 등이 튀니지에 도착하면 반드시 거치게 하는 튀니지의 대표적인 환영의 거리이다. 과거 이곳을 지배했던 프랑스가 만들 당시의 거리 이름은 알 길이 없으나 지금은 튀니지 독립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 이름을 따서 ‘하비브 부르기바거리(Avenue habib bourguiba)’라고 한다.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에는 아랍풍의 건물이 없다. 이 거리에 있는 수많은 골목길도 모두 17세기의 프랑스 도시를 상상하면 된다.

그런데 중심거리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메디나의 골목길로 들어서면 아랍세계가 펼쳐진다.

건물들은 간격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하얗게 회칠이 되어 있다.

울타리가 없으나 대문은 아주 크고 벽은 두껍고 창문들은 조그마하다.

건물이 모두 하얀색인 이유는 여름철 강렬한 햇빛과 고온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 사하라 사막의 건조한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서다.

골목길 안은 회칠이 벗겨지기도하고 여러 번 덧바르며 생긴 세월의 흔적들이 그들만의 색깔로 잘 보존되고 있다.

이 곳 메디나 골목길에 있는 가정집에 초청을 받아 가 본적이 있다. 35도가 오르내리는 여름철인데도 아주 시원했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집과 집 사이에 놓인 골목길은 아주 좁고 미로처럼 돼 있어서 낮 시간인데도 어두웠다.

집을 서로 붙여서 짓고 미로처럼 골목을 조성한 것은 아랍민족의 건축 양식이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의 목적이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런 가까운 구조 때문에 튀니지에서는 이웃이 모두 가족이 되는 것 같다.

▲ 튀니스 골목길에서 본 노을
▲ 튀니스 바르도의 골목길 풍경
▲ 튀니스 바르도의 골목길 풍경

▲부촌에서 만난 가르디언

튀니스에서 제일 현대화된 신도시가 있다고 해서 ‘멘자1(Menzah, 우리의 행정구역인 ‘동’)에서 ‘멘자 9’까지 틈나는 대로 골목길을 돌아다녔는데 이곳은 우리의 신도시나다를 바 없었다. 아랍풍의 건물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번은 튀니스의 5성급 쉐라톤호텔이 있는 인근에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골목이 있다고 해서 혼자 가보았다. 쉐라톤 호텔은 튀니지국영 텔레비전과 튀니지 외교부, 한국대사관이 가까운 곳에 있는데 이곳도 새로 조성된 구역이다.

이 곳은 다른 지역의 골목길과 다르게 집 한 채의 담 벽 길이가 보통 50m나 되고 담장이 너무 높아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은 집집마다 대문 앞에 사람들이 앉자 있어서 말을 걸어 보았더니 집을 지키는 가르디언(gardien, 경비원)이라고 했다.

튀니지 부유층 동네에는 겨울이든 여름이든 대문 앞에서 24시간 집을 지키는 가르디언들이 있다.

봉급은 당연히 집주인이 주지만 집안에는 들어 갈 수는 없다고 한다.

이 골목길을 30여분 걸어 다녔는데도 가끔 자동차만 지나갈 뿐 걸어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못해 약간 겁이 났었는데 가르디언 들이 곳곳에서 집을 지키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 튀니스 변두리의 골목길
▲ 튀니지 바르셀로나역 근처의 골목길
▲ 튀니지 중심가의 골목길
▲ 튀니지 자구완 주의 골목길
▲ 필자가 살았던 바르도아파트의 골목길

내가 살던 바르도 골목길의 주택들 1층은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2층은 붉은 벽돌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어떤 집은 철근 없이 한 층을 위태위태하게 올리기도 했다.

그 이유를 튀니지 친구에게 알아보았더니 튀니지 인들은 대가족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녀가 결혼하게되면 한 층을 더 올린다고 한다. 가족들은 몇 대에 걸쳐서 한 건물이나 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간다고 했다.

내가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골목길의 건축양식과 풍습들은 7세기부터 북아프리카를 지배한 아랍민족, 1574년부터 1705년까지 이곳을 지배한 오스만 터키제국과 이후 오스만 터키 후손들이 세운 후세인 왕조의 산물이다. 프랑스풍의 건물들은 1881년부터 1956년 3월20일까지 75년간의 이곳을 식민통치했던 프랑스의 산물이다.

나는 지방도시 엘젬, 스베이틀라, 자구완, 비제르트, 모나스티르, 켈리비아, 따바르카, 수스, 나불, 카이로완, 아인드라함 등에 있는 수많은 골목길에서 튀니지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와 풍속을 보는 재미를 느꼈다.

튀니지는 유럽의 단체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동양 사람은 보기 드물기 때문에 골목길을 걷다 보면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어린 눈길과 베푸는 친절에서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많이 알 수 있었다. 튀니지의 골목길은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보물 같은 아름다운 곳이다. 여행은 바로 이런 아름다움 때문에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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