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노천탕 많은 관광객 방문
소음·쓰레기는 주민 몫
장사 잘되는 횟집 주인은 외지인

관련 사업 주민 참여 방안 등 간과
조합 설립 주민 주체 개발이 ‘답’
방치하면 마을 공동체 해체될 수도

제주 2년차인 올 여름은 정말 더웠다. 고교 졸업 후 진학과 함께 떠난 뒤 이뤄진 40여년만의 귀향은 급속한 개발에 따른 시가지의 변화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라는 기후의 변화도 감내할 것을 강요하는 듯 했다.

누군가 ‘삼양찬물’에 가보라고 했다. 검은 모래해변 동편에 시원한 찬물이 내려오는 곳인데 노천탕처럼 만들어 놓은 곳이다. 삼양 사람들은 ‘새또리물’이라고 불렀다. 돌담을 넓게 둘러쳐 놓아 애들도 많이 왔다. 찬물에 온몸을 두세번 담그면 무더위가 오히려 축복으로 느껴질 정도로 시원했다.

빨래터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기 때문에 동네사람들은 빨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노천탕 길 건너 횟집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데 ‘외지인’이 한다고 했다.

이 노천탕 만들어 놓은 마을회장은 주민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고 했다. 마을 지원금을 쓸데없는 곳에 써서 주민들이 피해만 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남 좋은 일만 했다는 ‘민원’이다.

노천탕에 외지인들 몰려와 밤새 술 먹고 떠드니 주민들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쓰레기만 엄청나게 남겨 놓는 반면 돈푼 제대로 챙기는 주민들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부동산값이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삼양만의 일은 아니고, 그것도 사는 집이나 밭을 팔아야 현금을 만져볼 수 있으니 사는 게 나아졌는지 피부로 못 느낀다고 한다.

이게 바로 제주개발의 현실이다. 마을에서 명승지를 개발해서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와도 주민들 소득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집이나 밭을 팔아 한 번에 ‘거액’을 손에 쥘 수 있지만 자식들 나눠주고 뭐하다 보면 남는 게 없다.

한마디로 지속적인 소득능력이 없는 것이다. 주민들로서는 늦게나마 기술을 배워서 취직을 하거나 가게를 내보지만 안정된 소득의 기회가 쉽지 않다.

과연 삼양 마을회장은 후미진 동네 빨래터를 그냥 놔둬서 관광객이나 외지인이 오지 못하도록 했어야 하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검은 모래 해변과 ‘삼양찬물’은 서로 상승작용을 해서 마을의 가치를 올려놓았으니 잘한 일이라고 해야 한다.

문제는 마을 개발의 목표를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도록 하는 데까지만 설정했다는 점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면 땅값도 올라가고 돈 벌 기회도 늘어나므로 주민들 생활이 자동적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다.

관광객이 많이 오면 식당·카페·놀이터 등등 장사기회가 많이 생기는데 거기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거나 임대소득을 확보하도록 해야 개발 이익을 계속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그리고 개발 이후 관광객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와 소음 등 생활환경 악화에 따른 피해를 보상받는 방안도 고민했어야 했다.

외지인이 와서 식당이나 카페를 한다고 비싼 가격에 땅을 사겠다고 하면 덥석 팔아 버리는 것도 문제다. 결국 나중에는 주민들이 거기서 종업원으로 싼 임금에 일하게 될 수도 있다.

고급식당이나 카페 경영 노하우나 기술이 없는데 주민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삼양찬물’을 개발한 마을회의 경우를 예로 들면 빨래터뿐만 아니라 관광객 소음이나 쓰레기 피해가 미치는 주변 지역을 포함해서 공동 개발하는 방법이 있다.

조합이나 주식회사를 설립해서 개발지역내 땅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을 조합원이나 주주로 참여하게 한 후 식당이나 카페용 상가를 건설해서 임대를 주고 그 소득을 참여한 주민들에게 배분하는 것이다. 사는 집이나 밭이 포함된 주민에게는 조합에서 마을 주변에 새로 공동주택을 짓거나 공동농장을 조성해서 이주시킬 수도 있다. 주민은 땅 소유권을 보유한 채 이용권만을 조합이나 주식회사에 출자를 하는 것이다. 만약 땅을 팔겠다고 하면 사줄 수도 있다.

이게 주민이 주체가 되는 개발방식인데, 이런 골치 아픈 일을 할 사람이 시골에 있겠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지금처럼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땅을 팔고 외지인들이 장사를 도맡아서는 머잖아 마을마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말 것이다. 행정에서 마을개발 정책을 펼 때 명심해야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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