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상품도 ‘기성’ 아닌 ‘창의’ 대세
‘대중관광’은 낡은 트렌드
제주도는 모든 것 쏟아 붓는 모습

오라단지 역사흐름 읽지 못한 처사
관광 가장한 건설개발 사업
도민 힘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자

제주의 가치는 청정자연이다. 그리고 제주도가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는 것은 섬으로서 간직하고 있는 ‘문화적 자원’과 ‘역사적 흔적’이다. 제주를 찾는 많은 여행자들이 원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모두 피곤하게 하는 엄청난 속도의 일상과 거대한 규모의 도시경관으로부터 벗어나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치유’라고 부른다.

‘관광’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전근대 시대 관광은 소수의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 관광보다는 여행(travel)이라고 불린 공간적 이동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혀주었다.

근대적 민주주의는 여행도 민주화시켰다. 하지만 개인이 겪는 모험(adventure)으로서의 여행이 아닌 대중적인 관광의 시대가 도래 한다. 유원지가 만들어지고 놀이기구들이 들어선다. 유원지를 찾는 사람들은 만들어진 장소에서 이미 결정된 즐거움을 공유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렇게 획일화된 상품으로서의 관광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기성상품이 아니라 스스로 창의적으로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관광을 원하게 된 것이다.

제주도는 수백만 년 동안 만들어진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척박하다고 알려진 자연조건 속에서, 그리고 육지의 엄청난 착취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 낸 민초들의 삶의 양식과 그들을 지탱하게 했던 무속과 신화의 세계가 존재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대중관광(mass tourism)이 아니라 감상하고 향유하고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치유하게 하는 관광을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관광도시들의 구도심은 자동차와 고층건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다. 독특한 건축양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특정한 장소와 거기에 얽힌 사람들과 사건들의 역사적 기억을 불러낸다. 제주와 서귀포의 거리의 돌담과 골목은 그런 기억, 이야기로 가득하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의 경제적 번영을 위한 ‘개발’을 원한다면 위에서 이야기한 조건을 생태적·문화적·역사적 관광을 위한 자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제주도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낡은 대중관광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낡은 관광산업이 제주의 자연생태계와 문화적 자원, 역사적 흔적을 지워버린다는 점이다.

자연경관은 최대한 원형이 지켜져야 한다. 관광산업을 위한 편의시설 개발은 생태계에 대한 영향을 오랜 시간 면밀하게 검토한 후 추진돼야 한다. 도시에 남아 있는 문화적 경관은 그대로 보존돼야 하고 각각의 장소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여행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돼야 한다. 역사와 문화가 함께 있는 도시는 그 자체로 박물관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에만 관광산업은 제주를 터하고 살고 있는 제주사람들에도 이로울 수 있다. 화폐적 소득을 위해 제주사람들의 삶의 양식은 파괴되고 생활공간은 왜곡되고 유대와 연대의 정신이 사라진다면, 그런 개발은 자기 파괴적이다. 이전에는 주름져 겹쳐 있던 부피가 있는 공간이 자동차로 절단돼 파편화되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그만큼 팍팍해져 간다.

이미 제주도는 대중관광, 사람 머리 숫자와 쓰고 가는 돈으로 계산되는 양적 관광을 견대내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버리고 배설하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와 폐기물,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1인당 자동차 대수는 겉으로 드러난 단면일 뿐이다. 제주도는 안으로 골병들고 있다.

제주도의 엘리트라는 사람들은 변화되는 역사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는 역사적 안목이 없다. 지금 당장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다 팔아 떼돈을 벌고 싶어 한다. 자연이 만들고 수 천 년에 걸쳐 선조들이 만들어 왔던 것을 불과 몇 십 년 동안 다 ‘말아먹으려’ 한다. 무지의 소치라면 불쌍한 것이고 오로지 사익을 취하는 것이라면 악랄하다.

이렇게 보면 오라 관광단지 개발 사업 허가 소식은 놀랍지 않다. 그들이 하던 대로 하고 있는 것이니까. 이제 도민이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아닐까? 그들을 놀라게 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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