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음식
국가 보조금 정책으로 빵 값 저렴 보관해서 먹지 않아
고기에 갖은 야채 넣고 찌는 ‘쿠스쿠스’ 원주민의 음식
수세기 여러 민족 거쳐 가며 다양한 음식 자원 전래

여행을 하는 즐거움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보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만나는 즐거움, 자는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이 중 제일은 먹는 즐거움이다. 나는 음식이 다양한 튀니지에서, 여행은 정말이지 우리가 생전 먹어 보지 못한 색다른 음식을 먹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다. <편집자주>

▲ 튀니지의 야채들. 고추, 감자, 토마토, 오이, 양파, 완두콩

▲원주민의 음식 ‘쿠스쿠스’

튀니지에는 지난 수천세기 동안 이 곳을 거쳐 간 민족 수만큼 다양한 음식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 가운데 ‘쿠스쿠스 요리’(Couscous)는 몇 천 년을 이곳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 베르베르인들이 역사와 명맥을 같이 하고 있다.

튀니지의 전통음식 쿠스쿠스요리를 음미하기 위해 수소문 끝에 전통음식점인 ‘폰독 엘 아따린(Fondouk El Attarine)’을 찾아 갔다.

이 전통음식점은 기원전 2000년부터 베르베르인들이 살았던 튀니스(튀니지의 수도)의 메디나(구도심)에 위치해있는데, 원래 이 건물은 궁전의 일부였다.

이 곳에서 쿠스쿠스 요리를 주문했더니 먼저 바게트가 나왔다. 튀니지에서 빵은 주식이다. 보통 주식으로 먹는 길쭉한 빵은 프랑스 영향을 받아서 한국에서 파는 바게트와 같다. 이 빵은 듀럼밀(Durhum, 마카로니 밀)로 만든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식감이 아주 좋다. 그렇지만 하루가 지나면 딱딱해 지기 시작한다.

▲ 고추와 마늘, 하리사 양념이 들어간 스파게티

▲저렴한 빵과 고추장소스 ‘하리사’

튀니지에서는 굶는 사람이 없도록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빵과 우유가 아주 저렴하다. 1디나르(600원)를 내면 종류에 따라 바게트를 1개에서 5개까지 살 수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빵 집들이 많은데도 유독 한집에만 사람들이 몰린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듀럼밀로 만든 바게트는 하루가 지나면 굳기 시작하기 때문에 갓 구워 낸 빵을 사기 위해서였다. 이 가게에서만 빵을 구워내기 때문에 갓 구워낸 바게트가 떨어지면 그때서야 다른 가게에 가서 빵을 사는 것이다. 다음 날 출근하다 보면 아파트 입구에는 전날 먹다 남은 빵들이 비닐봉지에 담겨서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하루가 지나면 굳기 시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싸게 파는 빵을 구태여 보관하면서 먹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쓰레기를 분리해서 배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빵은 분리해서 버린다. 코란에 먹는 음식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고 쓰여 있기 때문이란다.

여기서는 바게트를 하리사(Harissa)라고 하는 소스에 찍어 먹는다. 하리사 소스는 향신료와 올리브기름이 들어간 튀니지 고추장이다. 처음에는 하리사 소스를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소스가 없으면 빵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중독이 됐다. 톡 쏘면서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 바게트빵과 닭고기 샐러드

▲샐러드 ‘슬라타’, 만두같은 ‘브릭’

바게트가 나온 다음에는 ‘슬라타(샐러드)’나 ‘스프’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 나는 ‘슬라타 무슈위야(Slata Mouchuia)’라는 샐러드를 주문했다. 슬라타 무슈위야는 빵을 잘게 빻아서 올리브기름, 토마토, 고추, 양파, 오이, 참치를 넣어 만든 것이다. 바게트를 이 슬라타에 찍어 먹기도 한다.

다음에는 전통음식인 ‘브릭(Brick)’이라는 요리가 나왔다. 브릭은 반달모양으로 속 피에 치즈, 참치, 야채 등 들어 있다. 맛은 한국의 튀긴 만두와 아주 비슷했다.

이제 쿠스쿠스(Couscous) 요리를 먹을 차례다. 메뉴판을 보니 쿠스쿠스 요리는 종류가 다양하다. 어떤 고기를 곁들여 먹느냐에 따라 양고기 쿠스쿠스, 쇠고기 쿠스쿠스, 닭고기 쿠스쿠스, 생선 쿠스쿠스가 된다고 한다. 나는 으뜸으로 치는 양고기 쿠스쿠스를 주문했다.

방금 요리되어 김이 무럭무럭 나오는 쿠스쿠스를 보니 맨 밑에 노란알갱이들이 있고 그 위에 토마토, 호박, 양파, 고추, 감자, 병아리 콩, 당근, 삶은 계란, 양고기가 얹혀 있다. 쿠스쿠스는 쪄서 만드는 요리다.

노란 알갱이가 처음에는 좁쌀인 줄 알았다. 탱글탱글하니 혀에서 느끼는 식감은 조가 아니다. 듀럼밀을 갈아 찐 뒤 말려서 만든 것인데 좁쌀처럼 생겼다. 일종의 좁쌀처럼 만든 파스타인데 재료 이름도 쿠스쿠스다. 이때 하리사 소스를 넣고 삶은 계란을 부숴 같이 먹으니 매콤하고 담백해서 식욕을 돋구어준다.

쿠스쿠스는 튀니지 가정에서 결혼식이나 축제 등 아주 중요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다. 음식 값은 고급 전통음식점 이어서 그런지 비싼 편이다. 40디나르(24,000원)가 나왔지만 음식 맛에 비해 아깝지 않다. 보통시내 중심가에 있는 식당에서는 15디나르(9000원) 정도면 쿠스쿠스 요리를 코스별로 먹을 수 있다.

▲ 튀니지에서 파는 참기를과 고추 통조림.

▲일상 점심메뉴는 터키식 케밥 일종

튀니지 사람들이 점심때 보통 즐겨 먹는 식사는 밀가루를 동그랗게 얇은 묵으로 만든 ‘샤워로마 리바니’나 빵을 샌드위치처럼 만든 ‘샤워로마 다보나’다.

‘샤워로마 리바니’와 ‘샤워로나 다보나’는 1574년부터 1705년까지 이곳을 지배한 오스만 터키가 남긴 음식유산이다. 터키요리인 케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샤워로마 리바니’와 ‘샤워로나 다보나’는 빵 모양만 다를 뿐 피는 똑 같다. 피 속에 양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숯불이나 가스불로 빙빙 돌리면서 익힌 후에 익은 부위를 끌개 칼로 조각을 내어 향신료와 채소와 토마토 등을 듬뿍 넣어서 판다. 가격은 4디나르(2400원) 정도 한다.

▲고추와 마늘을 애용하는 민족

또 다른 전통음식으로 해물 등을 넣어 만든 ‘오자(Ojjaa)’가 있다. 우리나라 죽과 비슷하다. 빵을 잘게 찢어 달걀과 하리사 등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 라블레비(Lablebi), 스파게티 위에 닭이나 소고기를 넣은 마카루나(Makarouna),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 간 계란찜 따진(Tagine) 등도 있다.

튀니지 사람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서 피자와 파스타를 많이 먹는데 종류가 다양하다. 이곳에서 피자는 식사다. 이곳 사람들이 피자를 먹을 때는 1인 1피자다. 보통 3디나르(1800원)에서 8디나르(4800원) 사이다.

튀니지 사람들은 음식에 고추나 마늘을 넣어 요리하는 것을 매우 좋아 한다. 슈퍼에는 고추나 마늘을 이용한 각종 양념들이 통조림으로 판매된다. 동네슈퍼에 가면 고추 저림과 마늘로 버무린 올리브 열매와 다진 마늘을 파는데 아침에 나온 제품이 저녁에는 동이 날 정도로 많이 먹는다. 마늘로 만든 식초도 판매하는데 500밀리리터에 2디나르(1200원)한다.

고추의 역사를 보면 고추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이며 동유럽에는 한동안 이곳을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에 의해 16세기에 전파되었다 한다. 그래서 튀니지 사람들은 우리 보다 고추를 먼저 먹기 시작 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곳에서 병에 담아 파는 고춧가루도 아주 맵다. 나는 튀니지 고춧가루를 이용해서 양배추나 우리나라 배추와 비슷하게 생긴 ‘카스’라는 나물로 김치를 자주 담가 먹는다. 2주 이상 넘어가면 물러지는 것이 단점이지만 맛이 있다. 쌀은 생산이 안 되기 때문에 주로 태국, 인도, 파키스탄에서 수입해 오는데 1kg에 1디나르45밀림(870원)이다.

나는 고향이 그리울 때는 태국에서 수입한 간장과 생강, 깨, 그리고 일본에서 수입한 참기름, 김치를 담굴 때 액젓 대신 이용하는 피시 소스(Fish Sauce), 파스타 등을 이용해서 잡채도 만들고 절임양파도 만들고 비빔밥도 만들면서 마음을 달랜다.

▲음식, 또 하나의 역사

튀니지에 온 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끝없이 펼쳐지는 올리브 나무들이다. 튀니지는 세계에서 네 번째 가는 올리브유 생산국이다. 어쩌면 튀니지가 기원전부터 여러 민족의 침략을 받은 것은 비옥한 땅에서 나는 밀과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 올리브 때문일지도 모른다.

튀니지 요리는 원주민인 베르베르 민족의 요리를 중심으로 페니키아인, 고대 로마인, 아랍인, 스페인, 오스만 터키와 프랑스 등 여러 민족의 고유 음식이 서로 어우러져서 전래되었다. 그래서 튀니지 음식은 여러 민족들이 튀니지에서 어떻게 적응하면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산역사가 된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